로이 헤인즈 VS 엘빈 존스

- 재즈 드럼의 혁신적 기법을 완성한 대가 -

97년 칙 코리아의 <Remembering Bud Powell>과 작년 조 로바노의 <Trio Fascination>을 통해 다시 한번 건재함을 과시한 두 노장 드러머가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창조적인 뮤지션들 뒤에서 더욱 큰 버팀목으로 작용하였던 로이 헤인즈와 엘빈 존스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이들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모던재즈 역사 자체임을 일깨워주었다. 로이 헤인즈는 버드 파웰과의 추억을 칙 코리아에, 엘빈 존스는 오넷 콜맨, 존 콜트레인의 혼을 자신의 드럼세트를 통해 조로바노에 전달하였으며 과거의 전설 고증에 끝내지 않고 이를 꿈틀거리는 현재의 언어로 승화시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로이 헤인즈가 1926년, 엘빈 존스가 1927년 생으로 단 1살 차이지만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은 로이 헤인즈가 10년 가까이 앞서 있다. 로이 헤인즈는 45년 새비 루이스 빅밴드를 비롯하여, 레스터 영 악단 등 스윙이 쇠퇴하던 시기에 데뷔하여 찰리 파커와 버드 파웰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던 때 그들의 그룹 구성원이 되어 비밥의 교본같은 레코딩에 하나하나 참여하기 시작, 그보다 연상인 맥스 로치, 아트 블래키와 거의 어깨를 같이한 밥재즈 드러머의 효시로 지칭된다. 엘빈 존스는 유명한 소니 롤린스 피아노리스 트리오에 참여하여 그 명성을 굳히고 결정적으로는 존 콜트레인 쿼텟의 정규멤버로 60-65년 사이 재적하여 드럼 마스터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0년 가까운 갭은 로이 헤인즈가 스윙과 비밥, 엘빈 존스가 하드밥, 모달, 프리재즈란 흐름에 있었다는 시간적인 배경만을 설명해줄 뿐 음악적 혹은 연주 기교적인 측면에서 보수 대 진보란 구분을 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둘을 모던재즈 드럼을 완성시킨 중요한 두 명으로 일컫지만 그들의 혁신성과 특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로이 헤인즈와 엘빈 존스가 등장할 때까지 의 간략한 드럼주법의 변천 약사를 살펴보겠다.

초기 뉴올리언스 재즈에서 드럼은 박자를 제시한다기보다는 스네어나 우드블럭을 사용, 몇 가지 리듬패턴을 간주로 넣고, 심벌은 극적인 효과를 증대하기 위한 부분에만 사용했다. 따라서 흥미로움밖에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지만 이러한 즉흥적인 리듬패턴이 발전의 모티브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이어 시카고로 전파되면서 주법이 다양해지기 시작했으며 대표적으로는 심벌박자와 림샷, 브러쉬 사용 등이 두드러지게 돼있고 이는 효과음향에서 리듬악기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스윙시대에는 개폐시 묘한 타임감각과 음색을 지닌 하이햇을 적극 사용하여 1,3박에 하이햇을 닫거나 심벌 혹은 스네어를 이용하여 굳건히 리듬을 지키는 스타일이 정착되었다. 그리고 화려하고 빠른 싱글 스트로크를 구사한 버디 리치, 유머감각과 두드러진 음색을 지녔던 진 크루퍼, 회전방향을 여러 각도로 구사하면서 감칠맛 나는 브러쉬웍을 지녔던 조 존스 등 여러 명인들을 탄생시켯다. 그러나 스윙시대까지 드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타이밍과 엔터테이너성인데 반해 빠른 코드전환과 기형적인 음형으로 이루어진 프레이즈가 보편화된 비밥에서는 다른 악기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새로운 연주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라이드심벌로 4박을 세기는 4비트이지만, 드럼세트 모두를 골고루 이용, 사이사이 하이햇으로는 심벌 액센트에 대칭 되는 2박 4박에, 베이스 드럼은 강력한 오프비트를, 스네어와 탐탐은 즉흥적인 리듬형을 만드는 필인 등 양손양발이 바쁘게 움직이며, 솔로 공간이 확대되어 재즈에서 가장 매력적인 악기로 떠오르게 되었다. 케니 클락이 이 스타일의 선구격으로 불리우나, 비트 사이 컴비네이션이 다소 소극적이며, 실제 아트 블래키와 맥스 로치에 의해 폴리리드믹한 비밥드럼의 골격이 잡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중 로이 헤인즈는 너무도 독특한 스타일로, 엘빈 존스는 이들에 의해 형성된 스타일을 복잡하게 가다듬어, 이후 모던재즈 드러머계보 가운데서도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불리운다.

이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노래하는 드럼이다. 물론 싱어란 뜻은 아니고 드럼 자체를 하나의 멜로디 악기처럼 취급하여 즉흥감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엘빈 존스의 경우 그의 스타일은 짧은 한 박 뒤에 3연음을 계속 이어 치는 순환패턴 성격이 강하나,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레가토에 변화를 주고 뒤의 비트가 점점 상승하여 격앙된 느낌을 주며, 항상 솔로 연주자의 페이스를 따라가거나 자신이 주도하는 인터플레이를 염두해 두기에 매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극적인 연출을 해낸다. 이따금씩 그가 프런트의 솔로 라인과는 상관없고 더구나 자신이 연주하는 드럼비트와도 동떨어진 멜로디를 연신 노래하는데 이는 결정된 박자를 세기는 심벌과 그 간격 사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홀수박자들이 하나의 멜로디처럼 어울려 그의 가슴속에서 절로 만들어진 노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헤인즈는 엘빈 만큼 몇 개의 박자가 뭉쳐져 계속 돌아가는 어려운 테크닉을 지니거나, 딱히 추종세력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연주를 들어보면 기발하고 유연하기에 그의 천성적인 기질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느낄 수 있다. 그의 드러밍은 엘빈과는 달리 결정된 감을 주지는 않고,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데, 액센트 하나하나가 명확하면서도, 비트를 아주 쉽고 태연하게 바꾼다. 속으로 멜로디라인을 상정해본다는 면에서는 엘빈 존스와 비슷한 것이지만 드럼이 멜로디악기와 일체 동화되어 반응하는 그대로 스틱이 따라가는 초유의 스타일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특징으로 사이드맨으로서는 엘빈 존스가 역동적이고 긴장감 높은 음반에, 로이 헤인즈는 고도의 센서가 요구되는 음반에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둘 모두 천편일률적인 드러머가 아니기에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온 어떤 음악에서건 유연하면서 확실한 연주를 들려줘 왔다. 테크닉면에서는 엘빈 존스가 뛰어나다 할 수 있지만 로이 헤인즈자 평이한 주법으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소위 느낌이 좋은 드러머란 인상이 개인적으로는 깊게 자리하고 있다. 찰리 파커, 델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뿐 아니라 게리 버튼, 칙 코리아가 예우 차원이 아닌 분명 음악적으로 필요하기에 그를 초빙해야하는 근원에는 변화에 대한 의식적인 동참이 아닌 선천적인 감이 우선하였던 힘이 있다. 그러나 사이드맨으로서 충분할지 몰라도 실제 리더작을 냄에 있어서는 뚜럿한 방향이 드러나지 않는 즉 연주 개성에 비해 음악적 개성의 부족이 아쉬움이 들기도 하는 이가 로이 헤인즈이다. 최근 칙 코리아의 <Remembering Bud Powell>에서 갑자기 부상되지 않았다면 가장 낮은 평을 받고 있는 드러머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앨범 <We Three>에서는 파이너스 뉴본 주니어가, <Out of Afternoon>에서는 롤랜드 커크, <Te Vou>에서는 팻 메스니가 더욱 부각되었다는 점은 명연임에도 불구 누구의 리더작인지 판단하기 힘든 선명함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반면 엘빈 존스는 콜트레인 쿼텟 정규멤버 출신 중 리더의 음영에 함로되지 않고 연관을 지니면서도 음악적 변천을 껴안는 대안의 기틀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70년대 들어서면서 자신의 그룹에 스티브 그로스맨, 조지 콜맨 등 콜트레인 추종자들을 영입, 진보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후 재즈 머쉰이란 프로젝트에서는 이끌며 라비 콜트레인, 니콜라스 페이튼, 조슈아 레드맨 등의 신인을 배출하였다. 그와 다른 시대적 정서를 지닌 젊은이들을 이끌고 독려하면서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했기에 리더로서의 이미지는 엘빈 존스가 로이 헤인즈에 비해 큼이 분명하다. 로이 헤인즈는 엘빈 존스 대신 파트 타임으로 존 콜트레인 그룹에 재적하고 에릭 돌피, 게리 버튼, 팻 메스니 등 어떤 시대의 스타일리스트에도 적응할 수 있는 지속적인 발전형 드러머이며, 칙 코리아의 <Now He Sings Now He Sobs>에서 들려준 카운트 기능을 배제하고 퍼커션을 두드리듯 피아노의 멜로디라인과 같이 가는 그의 드러밍은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엘빈 존스는 토미 프래내건의 <Over Seas>앨범에서 브러쉬만으로 피아노 터치를 살려주고, 스탄 게츠와 함께 할 때는 발라드 연주를 역으로 채워주는 연속적인 탐탐과 스네어의 필인을. 오넷 콜맨 블루노트 리더작에서는 일정 규범 속에서 자유롭게 여러 장식음을 끊임없이 찔러주어 템포, 형식, 뮤지션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드러머이다. 일부인들이 말하는 난잡하고 복잡한 폴리리듬만을 구사하는 중구난방형 드러머란 평은 분명 그의 연주를 통찰하여 듣지 못하고 속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 개성있는 재즈 드러머가 많이 있지만, 한 분야에서 50년 넘게 정상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이가 과연 zucdlsk 될까? 로이 헤인즈와 엘빈 존스가 과거의 추억만을 품고 있다면 이 둘은 결코 지금의 위치에 있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바로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니었는지..

<레코드 포럼 4월호중 -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김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