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베이스계의 양대 산맥 -
베이스 특히 콘트라베이스는 명확하지 않은 저음의 진동으로 인해 어지간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 악기이다. 그러나 재즈이던 팝이던 간에 베이스가 없는 편성은 무릇 상상하 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가령 베이스를 뺀다면 여기 대체될 수 있게 리듬과 화성 을 충족시켜 주는 패턴으로 연주하거나, 아예 두 요소를 무시해 버리는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만 과연 음악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인가 의구심이 남기도 한다. 재즈에 있어 이 악기는 멜로디 와 리듬의 가교 역할을 한다. 리듬의 경우 4, 8, 12, 16비트, 라틴, 아프리칸, 에스닉 등 여러 접근법이 있고 그 안에서도 비트를 분할하는 방식이 세분화되어져 있다.
대개의 경우 베이스는 드럼과 호흡을 맞춰 그때마다의 그루브를 발생시키고, 밴드의 가장 밑바닥 이 되는 하모니를 제시한다. 따라서 리듬과 멜로디의 시발점이 이 베이스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지휘 자 역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즈사에 있어 연주로 배후 조정자 기능을 하면서 전면에 나서 음악 전 체를 통괄하며 눈부신 리더십을 발휘한 베이시스트는 손에 꼽을 필요도 없이 찰스 밍거스, 자코 패스 트리우스 이 둘에 국한될 것이다. 물론 오스카 페티포드, 론 카터, 찰리 헤이든, 마커스 밀러 등 확실 한 사운드 색채를 지닌 예가 많지 않았느냐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두 사람만큼 마력같은 통솔 력에서 발산되는 카리스마는 분명없다. 하지만 폴 체임버스, 레이 브라운이 했던 바를 많은 베이시스 트들이 따르고, 이들을 마음의 은사같이 생각하는 이유에 리더로서 확실한 컨셉을 지녀서라는 단서 가 붙지 않는다. 여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조율자 즉 사이드맨으로서 최고란 칭호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베이시스트의 명반은 드물지만 명연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 명연은 연주라인이 좋을 뿐 아니라 리듬과 멜로디의 중간다리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 전체연주를 북돋울 때 발생한다. 지금 소 개하는 두 명인 데이브 홀랜드와 닐스 페더젠, 이들은 유럽이 미국의 영향을 넘어서 서서히 독자적인 음악을 내세울 즈음에 등장하였으며, 베이시스트로서의 덕목을 완벽히 갖춘 이들이다. 두 사람 모두 1946년 생이며, 연령상 위로는 조지 므라즈(44년, 체코), 장 프랑소와 제니 클락(44년, 프랑스), 페테르 코발트(44년, 독일), 아릴드 안데르센(45년, 노르웨이), 앙리 텍세(45년, 프랑스), 동갑으로는 팔레다 니엘슨(46년, 스웨덴), 아래로는 밀로슬라프브 비투스(47년, 체코) 등이 있다. 거기에 조금 앞선 세대 인 에베하르트 베버(40년, 독일)까지 포함한다면 공통점이 바로 40년대 태생들에 의해 유럽 재즈 베 이스의 독자성이 확립되어졌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들 중 데이브 홀랜드와 닐스 헤닝외르스테드 페더젠은 공히 음악 바탕에 클래식이 자리하면서 특별한 민족 색이나 유러피언 정서가 드러나지 않 는다. 이는 여러 음악 경로를 거친 후 재즈적인 어프로치가 가장 깊게 자리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으로 밀로스라브 비투스처럼 공백기없이 미국 뮤지션들과의 교류과 많고, 데이브 홀랜드 마일 즈 데이비스, 닐스 페더젠은 오스카 피터슨이란 빅 네임과의 활동이 명성 중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 며, 연주하고 싶은 뮤지션 중 가장 우선 하는 이로 꼽힌다. 때문에 경력과 스타일상 탈유럽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경향 또한 배제 할 수 없다.
데이브 홀랜드가 데뷔할 당시 영국 음악계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그리고 비틀즈의 영 향이 뒤섞여 혹자는 락으로, 또한 어던 이는 모던재즈로, 일부는 프리재즈의 초석이 되었던 혼돈의 60년대 말이었다. 반면 닐스 페더젠은 일류 뮤지션과 공연을 거듭하였지만 그들이 얼마만큼 위대한 지 조차 알 수 없었던 불과 13세에 프로뮤지션으로 출발하여, 16세에 덱스터 고든, 버드 파웰 등과 공연을 통해 일찌감치 덴마크 최우수 재즈뮤지션에 선정된 조숙한 천재였다. 우선 데이브 홀랜드는 클래식, 진보적인 락, 프리재즈 등을 경험하며 지향점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닐스 페더젠은 앨버트 애일러와 함께 하여도 정통적인 라인을 잃지 않는(<My Name is Albert Ayler>) 전형적인 모던 재즈 베 이시스트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향점이 어떠하든 간에 이 둘의 베이스 음색과 리듬감 멜로디 라인 은 확고하며 동종 악기 플레이어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발군의 연주력을 지녔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둘의 연주에 대해 비교해보기로 하겠다.
닐스는 피치와 튜닝, 재즈의 전통 등 기본적인 요소를 중시하며 연주에서 놀라뭉을 금치 못하는 테 크닉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라인은 탄탄하면서 선명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프런트라인 을 미는듯한 인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베이스 음이 여타 악기군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부 각되는 이유에는 일단 현의 장력이 높아 고음에서의 탄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강하며 흑인 뮤지션 들이 정상박자보다 뒤에 가는 비하인드 비트 기질이 많은데 반해 박자 앞에서 먼저 가는 프런트 비트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교자체가 몸에 밴 확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 중 양손 무명지와 새끼 손가락까지 사용하는 주법과 하모닉스, 더블 스탑을 사용, 콘트라베이스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나 'Donna Lee'같이 템포가 빠르면서 운지가 까다로운 곡 을 거침없이 연주 해내는 면은 한계가 없는 테크닉이라 하여도 무방한 면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 까지나 보조수단인 테크닉을 적소에 응용할 따름이다. 그가 25년 넘게 함께 하였 던 오랜 스승이자 동료 케니 드류와 함께 하였던 오랜 스승이자 동료 케니 드류와 함께 할 때는 초심 자에 권장할만한 유순한 변주라인을 더욱 소담스럽게 뒷받침하는 긴 잔향의 비브라토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확실히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미국에는 레이 브라운이 있고 유럽에는 닐스 페더젠이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데이브 홀랜드 역시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잘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러나 그의 테 크닉 때문에 귀가 번쩍 뜨인다라고 느껴지는 면은 없다. 음량이 그리 크지 않고 프런트 라인의 멜로 디 를 따라가다 보면 베이스에 대해 주의를 게을리 하게 되는 경향 또한 없지 않다. 그럼 왜 그가 뉴욕 클럽에서 베이스 솔로 공연을 하게 되면 근처 베이스플레이어들이 몰려와 입석으로 구경하게 되는 것일까? 또한 그가 현재 재즈계에서 일정이 가장 바쁜 뮤지션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는 비단 플레이어에 국한되지 않고 이 범주를 뛰어넘어 매순간 음악 그 자체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연주를 두 차례 눈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있기에 허비 핸콕과 마이클 브레커가 새로운 영감의 멜로디를 계속 쏟아 부을 수가 있다는 걸 절감했다.
그의 반주는 에너지와 텐션을 높이는데 아주 이상적으로 워킹과 멜로디를 순간순간 전환하는 패턴 이 아닌 4분 음표 중심에서 계속 비트가 세분화되어 8, 16, 32분으로 수시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라인 으로 솔로 연주자의 플레이를 한층 고무시킨다. 음역의 경우 에디 고메스가 고음, 찰리 헤이든이 저 음이란 어딘가 결정된 스타일이 있지만, 데이브 홀랜드는 중저음과 고음의 배분이 아주 고르고 흐름 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튀지 않는 중용의 음색에 자연스런 연결로 인해 긴장 을 품고 잇는 음들이 그리 확연하게 와닿지 않지만, 이는 연습과 실전을 거듭하며 그룹 내에 연주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포지션을 스스로 터득한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일즈 데이비스, 칙코리아 , 펫 메스니, 앤서니 브랙스턴, 스티브 콜맨, 케니 배런 등 자신이 참여한 포맷에 항상 유동적으로 적 응하여 그 중심에서 최선의 연주를 이끌어 내기에 그의 독창성은 흉내내기 힘들면서도 궁극의 연주 라는 표본같은 존재로 되어 있다.
닐스 페더젠이 스티플체이스, 파블로, 에픽, 버브 등을 통해 약 25장은 리더작을, 데이브 홀랜드는 ECM 11매 포함하여 15장 정도의 솔로 리더작을 현재까지 발표고 있다. 전공악기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양이며, 리더십보다는 형성한 포맷의 발전 내지 악기 가능성 추구에 자신의 주장을 가미한 경향이 많다. 그중 페더젠의 <Dancing on the tables>(79, SteepleChase), <To a Brother>(93, Epic)과 데이브 홀랜드의 <Dream of the Elders> (95, ECM), <World Trio>(95, veraBra)를 추천해보고 싶다. 그의 나이 14 세였던 1960년이래 덴마크를 방문하는 미국뮤지션들에 계속 이상적인 파트너로 존재하고 있는 닐스 헤닝 외르스테드 페더젠과 22세의 나이에 도미하여 오늘날 가장 신임을 얻는 베이시스트로 추앙 받고있는 데이브 홀랜드, 이 두 명은 분명 유럽이 배출한 명인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레코드 포럼 2월호중 -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 김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