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Battle of Jazz -
드디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캔사스 시티'. 영화가 시작되면서 카메라는 극중 헤이헤이 클럽의 입구에 부착된 포스터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간다. "The Battle of Jazz - Lester Young vs. Coleman Hawkins"라고 적힌 이 선명한 암시를 잊을 무럽, 알트만은 그가 영화에서 진정 보이 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헤이헤이 클럽의 내부로 옮겨간다.
무대에는 두 명의 테너 색소포니스트가 뜨거운 즉흥 연주로 맞붙는다. 콜맨 호킨스로 분한 크레이 그 핸디, 그리고 레스터 영을 대역하고 있는 조슈아 레드맨은 두 테너 명인의 경연을 사실적으로 묘 사한다. 극중 레스터 영의 유려한 솔로 애들립을 받으며, 당시 테너색소폰의 절대 권위자였던 콜맨 호킨스는 "장난이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아예 재킷을 벗어 던지고, 한껏 톤을 높여 응수한다.
그것은 서로의 자존심과 목숨을 건 전투였으며, 두 사람이 뿜어내는 트레이드에는 불꽃이 튀고 있 었다. 우리는 로버트 알트만의 의도대로 재즈 역사에서 가장 짜릿한 승부를 상상할 수 있었으며, 재 즈에 함유된 짜릿한 쾌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뜨거운 테너 배틀은 1934년 캔사스 시티의 서 브웨이 재즈 클럽에서 실제 행해졌던 사건의 역사적 재현이다. 애프터 아워 잼 세션(After Hour Jam Session)으로 펼쳐진 이날의 격전은 이튿날 해가 뜰때까지 그칠 줄 몰랐으며, 이를 위해 여섯 명의 피 아니스트가 지쳐 나가 떨어졌다고한다.
그리고 뉴욕 재즈 신을 대표했던 콜맨 호킨스를 상대하기 위해 캔사스 시티의 테너 맨들이 대거 동 원 되었으며, 이 거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레스터 영은 비장의 카드로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 고 있었다고 전한다.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의 충돌은 테너 색소폰의 역사, 더 나아가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찰이자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재즉적인 악기로 평가되어 있는 테너 색소폰의 위상은 두 사람의 비교 -논재을 통해 재즈계의 초점을 테너 색소폰으로 모셔오면서 부터라 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스타일상의 대립은 당시 재즈 씬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로 떠올랐으며, 이 논쟁 과 맞물려 스윙 시대 솔리스트의 비중도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이렇게 밴드의 통제에서 보다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게 된 솔리스트의 활약을 통해 모던 재즈의 태동이 고무되었음은 당연한 추론일 것이다. 1904년 미주리에서 태어난 콜맨 호킨스는 1921년 블루 스 보컬리스트 마미 스미스의 '재즈 하운드'에 참가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과 함께 따라 다니는 '테 너 색소폰의 아버지' 칭호를 얻는다. 그의 출현 이전, 테너 색소폰은 유난히 큰 음색으로 재즈 악기로 는 부적격 판정을 받은 버려진 악기였다.
그러나 콜맨 호킨스는 테너 색소폰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호방하고 큰 음색을 전면 에 드러내는 한편, 비브라토를 가다듬고, 복잡한 화성과 코드가 교차하는 솔로 프레이즈를 펼침으로 써 테너색소폰의 숨은 매력을 제시한다. 그가 표방했던 호방하고 남성적인 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강인한 비브라토, 복잡한 화성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구조적인 프레이즈는 이내 테너 색소폰의 악 기적 특성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콜맨 호킨스의 지대한 영향력은 '테너의 빅 3'로 평가받았던 벤웹스 터를 포함하여 당대의 모든 테너 맨들이 절대적으로 추종하고 신봉하던 테너 색소폰의 교리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콜맨 호킨스 추종자들은 그의 음악에 서려 있는 빛나는 창의성과 유려한 구조성 을 모방할 수는 없었다. 콜맨 호킨스는 단순히 힘있는 음색, 강렬한 블로잉의 강조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의 테너에는 저음과 고음이 폭넓게 투사되었으며, 이런 다채로운 색감은 특유의 화성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논리 정연한 구조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 조절되었다. 또한 콜맨 호킨스의 음악 에서 언제나 향유할 수 있었던 직선적인 생명력과 솟구치는 에너지는 세월의 흐름과 무관한 것이었 으며, 블루스, 스윙, 비밥, 심지어 보사노바의 해석에 있어서도 한결 같이 보존되고있었다.
콜맨 호킨스의 남성적인 스타일이 거역할 수 없는 규범으로 숭상 받던 시절, 레스터 영의 출현은 거 대한 도전이었으며, 논쟁의 출발이었다. 1930년대 킨사스 시티 재즈를 호령했던 월터 페이지, 베니 모튼,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를 차례대로 순회하면서 레스터 영은 콜맨 호킨스의 절대권력에 반 기를 든 유일한 존재였다. 그의 메시지는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이었다. 부드럽고 가녀린 톤, 가볍고 메마른 비브라토, 길게 풀어진 긴 멜로디 라인, 섬세 하고 매끄러운 프레이즈.... 그는 빈약한 음량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진보적인 구성으로 메웠다.
부드러운 스윙감을 토대로 긴장감 넘치는 리프의 강조, 드라마틱한 구조로 풀어 나가는 감각적인 프레이즈로 그는 독창적인 사운드를 개설한다. 레스터 영은 흑-백의 사운드를 자신의 중심으로 끌어 들여 유화시켰으며, 이런 그의 음악에는 자유로움과 창조적인 영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콜맨 호킨 스의 스타일을 고구려 미술품의 호방함에, 레스터 영의 스타일을 백제 미술품의 부드러움으로 설명 하는 비유는 너무나 적절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동안 멸시되고, 심지어 이단으로 폄하되기도 했던 레 스터 영의 테너 스타일은 콜맨 호킨승의 부재 - 34~39년 까지의 유럽 체재 - 와 맞물려 테너 색소폰의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 매김 될 수 있었다.
더불어 1940년대 많은 젊은 뮤지션들이 레스터 영의 그늘에서 모던 재즈의 불을 지피게 되었다. 이런 레스터 영의 진보적인 스타일과 그의 음악이 모던 재즈의 지침으로 작용했다는 영향력을 평가 되며, 훗날 레스터 영은 '모던 재증의 선구자'라는 영광에 자리하게 된다. 레스터 영의 탐구에서 비밥 의 단서를 찾아냈던 찰리 파커, 레스터 영의 정제된 사운드를 오케스트라화 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The Birth of the Cool>, 그리고 스탄 게츠, 주트심즈로 대표되는 포 브라더즈는 레스터 영의 여성적이 고 감성적인 음악성을 연장시켜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레스터 영이 모던 재즈, 쿨 재증의 형성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분명히 인식할 지라도,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의 비교를 '진보와 보수'의 구도로 응시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일 것이다. 콜맨 호킨스 역시 모던 재즈의 형성에 튼튼한 반석이 되었던, 시대를 앞서 갔던 선각자였다. 콜맨 호 킨스는 1934년 기존의 스윙 밴드에서 관례화 되어었던 화음에서 이탈하는, 모던한 솔로를 제안한 바 있다. 그는 특정한 계파에 묶이지 않은 채 40년대 이후 새로운 세대의 연주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흡수, 소화했으며, 언제나 신선하고 자유로운 임프로바이저로 자신의 이상 을 실천해 왔다.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 조 헤더슨, 진 애먼즈, 웨인쇼터, 브랜포드 마샬리스, 제임 스 카터, 크레이그 핸디까지......
콜맨 호킨스로부터 테너 색소폰의 역사가 열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제거하더라도 콜맨 호킨스의 그림자는 오늘날까지 모든 테너 맨들의 음악 속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모던 재즈 테너 색소폰의 출발이 "음색은 호크로부터, 프레이즈는 레스터로부터"라는 구호에서 열리 듯이, 두 거인의 진검 승부는 모던 재즈시대에 이르러 희석되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두 사람의 진 정한 대결은 1930년대 초반, 레스터 영이 막 출현하고 콜맨 호킨스가 아직 유럽으로 떠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이 전부였을는지도 모른다.
레스터 영이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상종가를 기록할 무렵에는 콜맨 호킨스는 미국땅에 없었다. 또한 콜맨 호킨스의 복귀 이후의 시점에서는 후배들은 모던 재즈라는 새로운 항해에 매진하고 있었 고,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의 스타일은 그들에 의해 나름대로 정리, 융화되어 버렸다. 이런 외부적 인 환경으로 인해 두 사람은 상이한 스타일도 변모해 갔다. 레스터 영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던 고음역의 사용과 짙은 비브라토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게 되며, 콜맨 호킨스 역시 자신의 정력 적인 스타일에 레스터 영의 부드러운 프레이즐 부착시켰다.
1944년 <Jamming with Lester>에서 함께 연주했던 'Lady Be Good'을 들어보면 서로가 고집해왔던 스 타일의 대비와 함께 과거와는 사뭇달라진 그들의 수용과 변화의 과정을 잠시 엿볼 수 있다. 한편 마 약과 알코올의 수렁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의 공백을 비집고 테너 색소폰의 중심은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의 구도로 재편되어 갔다. 그리고 JATP, 버브왕국에서 함께 울타리를 마련했던 1950년대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은 스스로의 명성에 걸맞은 명연들을 수확해 왔지만, 1959년 레스터 영의 돌연한 죽음으로 두 사람의 대결은 역사속에 묻혀 버렸다.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라이벌로 평가받는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 그들의 드높은 음악적 가치를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끌어 온 '대결'과 '전투'라는 흥미로운 용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그치지 않는 두 테너 색소폰의 거인을 향한 논쟁은 재즈의 발전과 진화의 소중한 촉매가 되어 왔음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은 서로 대립되는 스타일로 일생동안 비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너무나도 닮아 있다. 이 산만한 글을 정리하며 두 사 람의 비교 - 대립 보다 더욱 소중한 그들의 동질성을 기억하고자 한다. 버림받은 악기였던 테너 색소 폰의 가치와 매력을 일깨웠던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 콜맨 호킨스, 그리고 기존의 관념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제안함으로써 모던재즈의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던 레스터 영.
그들이 함께 꿈꾸었던 세계, 함께 바라봤던 음악적 시선은 관성을 거부하고 늘 새로움을 향해 나아 갔던 선각의 모습이었음을......
<레코드 포럼 1월호중 - "플레이어 VS 플레이어" - 하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