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터 고든 Dexter Gordon
나는 덱스터 고든을 생각하면 항상 수목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도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떡갈나무 고목이다. 키가 크고 모자가 잘 어울리는,
핸섬하고 과묵하고 쿨한 테너 맨, 덱스터 고든. 특히 말년의 그는 마약 중독의
상흔을, 그리고 국적 이탈자의 고독을 마치 나무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발치에
떨구고 있었다.
덱스터 고든의 음악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즐겨 듣기 시작하였다. 학원
소요의 와중에서, 주위 사람들은 재즈 바에서 존 콜트레인이니 알버트
아일러니 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열심히 귀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그
옛날의 밥 재즈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맨 처음 들은 덱스터 고든은 사보이
판이었다. 거의 무서움을 모르고, 기분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덱스터
프레이즈'를 불어대는 젊은 날의 덱스터. 기숙사의 친구인 와델 그레이와
주고받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테너 연주, 'The Chase'도 정말
멋졌다. 물론 찰리 파커 또한 뛰어나다. 하지만 덱스터는 나의 개인적인 영웅
중의 한 명이었다. '덱스터 고든'이란 이름만 들어도 웬지 가슴이 두근거였다.
그 울림 속에서 재즈의 초연을 또렷하게 맡을 수 있었다. 마치 '알파
로메오'란 이름이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말기의 덱스터에 대해서는 상당히 냉담한 편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늘 젊은 날의 발랄한 그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주
스타일을 의욕적으로 혁신한 1960년대 블루 노트 시절의 녹음도 곧잘
들었지만 그 이후의 연주에는 어쩐지 적극적인 도취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가 상실되어 있다고 느꼈다.

상실된 것은 아마도 그 '초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슴 설레임. 덱스터가
주연한 영화 [라운드 미드나이트]를 마지막 장면까지 본다는 것은 참으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나로서는 영화의 질 운운하기 전에 하나의
상실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삼켜져 버린, 냄새를 잃은
흔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자리에서 - 나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 그의 말년인
1976년에 녹음되어 콜롬비아 사에서 나온 라이브 판을 선정하고 말았다.
질적으로 따지자면, 그의 훌륭한 연주는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문장을 쓰면서, 생각하면 할수록 '이 레코드를 선정하지 않을 수
없지' 싶은 마음이 고조되었다. 덱스터 고든이라는 고고하고 성실한 뮤지션에
대한 경의의 발로로.
오랜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 무대에 오른 그가 우디
쇼와 루이 헤이즈의 격렬한 레귤러 쌍두 밴드(에서 네오 멕클린이 빠진
유니트)를 거느리고, 예전과는 달리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 자극적으로
색소폰을 불어대는 Our Man, 롱 툴 덱스터. 거기에는 틀림없는 초연의
냄새가 있었다.
재즈 에세이(Portrait in Jazz) 중에서
와다 마코토 그림/무라카미 하루키 글/김난주 옮김/열림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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