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 베이시 Count Basie
아무리 허망한 영위일지라도 궁극을 따져보면 그 나름의 고유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머셋 몸이 말했듯,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이다.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에도 물론 철학이 부수된다. 그것은
바로,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큰 소리로 듣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철학은 아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진실이다.
왜냐하면 카운트 베이시가 빚어내는 음악에 담겨 있는 가장 훌륭한 특질은 그
음악적 '풍압'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커 앞에 앉아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음악을 듣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날아갈 뻔했다면(불과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신은 이미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풍압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소리를 크게 하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소리가 큰 악단'이란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보다 음향적으로 박력있는, 물리적으로 큰소리를
내는 빅 밴드는 그밖에도 많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진정 탁월한 부분은 그 소리의 작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정성스럽고 자연스럽게 조그만 소리를 쌓아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작은 음을 사용하여 듣는 이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윙을 들려주는지,
마치 쾌활한 고문자처럼...... 가만히 앉아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 놀라운
솜씨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정이 동으로 전환되어, 브라스 밴드가 거침없이 와일드하게 포효할
때 우리들은 낙차의 다이너미즘에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튕겨나가는
것이다. 작은 소리든 큰소리든 진지하고 대담하게 스윙하는 재주만큼은 다른
어떤 밴드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 밴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해도,
캔자스 시티에서 온 윌리엄 베이시(카운트 베이시의 본명) 씨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버브 사에서 나온 '베이시 인
런던(Basie in London)'이다. 카운트 베이시는 라이브를 녹음한 멋진 앨범이
몇 장 있는데, 아무튼 신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이 레코드 한 장이면
그만이다. 그 옛날의 재즈 뮤지션의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나쁠
정도'로 스윙하는 연주다. 너무 여러 번 말해서 집요하다 싶은 감이 있지만,
볼륨을 가능한 한 크게 올리고 듣는 편이 좋다. 연주는 첫 시작부터 끝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특히 LP A면에 들어 있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여섯 곡의
박력은 압권이다.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다. 곡은 '샤이니 스타킹(Shiny
Stocking)'에서 '하우 하이 더 문(How High the Moon)'으로 옮겨 간다.
이러니 저러니 골치 아픈 말 떠들 필요없이, 캔 맥주 하나 손에 들고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스테레오 볼륨을 한껏 올려 소리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다.
재즈 에세이(Portrait in Jazz) 중에서
와다 마코토 그림/무라카미 하루키 글/김난주 옮김/열림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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